<설립목적>
본원은 1995년 설립한 한국철학연구소를 계승하여 한국사상과 문화를 탐구하고 교육하며, 국내외적으로 이해를 심화시킴으로써 동서와 고금을 잇고 미래지향적 방향에서 새로운 학술문화의 장을 여는데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한국사상연구원 창립에 즈음하여>
이 글은 2022년 새해를 맞아 한국사상연구원을 새로이 설립함에 즈음하여 우리가 함께 새겨 보아야할 문제로 생각되는 바를 떠올려 본 것이다. 지난날 때마다 논급되었던 편린들이다.[참조: 「한국철학사연구회, 돌아보고 내다보기」, 한국철학사연구회 창립 30주년 기념학술발표회, 2018]
한국은 아시아 동북방에 위치한 작은 나라로서 수 천 년의 오랜 세월을 거쳐 민족문화를 지켜왔다. 한국은 동방의 작은 덩치로 그 규모가 어느 정도 비슷비슷한 대상을 상대한 것이 아니라, 바다와 같이 넓고 거대한 대륙문화의 파고를 타고 넘어야만 하였다. 마치 한 개의 주머니 같이 생긴 한반도에 다양하게 발전된 대륙문화 전반을 받아들여 골고루 소화, 섭취하고 응용할 수 있는 튼튼한 체력이 요구되었으며, 이를테면 가슴팍 모양의 아시아 대륙에 솟은 유방의 꼭지에서 자양분을 갖춘 엄마젖이 샘솟아서 아기가 건실하게 자랄 수 있어야 하였다. 실제로 한국은 역사적으로 ‘풍부함’과 ‘번성함’으로 상징될 수 있는 국제적 수준의 중국문화를 수렴해온 것이 사실이다. 다만 그것이 단순히 모방의 파편에 그치지 않고, 주체적이며 창의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는가에 대한 성찰이 요망된다.
중국을 번성하게 핀 꽃이라 한다면, 간방(艮方)인 한국은 단단히 여문 열매로 비겨볼 수 있을 법하다. 한국은 대륙에서 꽃피운 온갖 학술문화가 이곳에 이르러 재검토되고 재결론을 내리게 되는 위치였다. 이를테면 아시아의 종착역이요, 시발점으로서의 한국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를 되새겨보게 되는 것이다.
인류는 생활하면서 생각한다. ‘생각’을 다소 고차적으로 뭉뚱그려 ‘사상’이란 말을 쓸 수 있다. 생활을 떠나서는 사상이란 없다. 사상은 넓은 개념이다. 철학이란 보다 근본적으로 생각하고 성찰하며 추리하고 판단하는 단계이다. ‘생활’과 ‘사상’과 ‘철학’은 위 아래로 연결되어 있는 삼박자라 할 수 있다. 서로 안고 안기는 관계이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생활하고 생각하며 철학한다. 다시 말하면 사상이란 매우 큰 개념이며 그것이 포함하고 있는 영역은 여러 방면으로 열려있다. 종교사상, 철학사상, 예술사상, 정치사상, 법률사상, 경제사상 등 수 없이 많다. 이념적, 추상적, 논리적인 것이 있는가 하면 실질적, 구체적, 행동적인 것도 있다. 그 가운데 철학사상은 이론적이며 원리적으로 이 모두를 포괄적, 개별적으로 관여하는 바, 보다 고차적인 사고의 단계를 말한다. 어떻든 생활을 떠나서 철학이나 사상을 일컬을 수 없다. 사상은 여간해서 바뀌지 않을 만큼 원리적으로 굳어진 것도 있고, 삶의 흐름과 더불어 변동하고 창조되는 것도 있다. 개별적으로 특수한 것이 있고,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도 있다. 그러나 사상은 인간의 사색과 자각의 결과인 까닭에 관습이나 언어 문자에 담겨져 의미를 전달할지언정, 인간의 의식으로 환원되지 않는 어떠한 것도 사상으로서의 의미가 없다.
한국사상이 관여하는 폭은 다방면이었다. 한국인의 삶과 역사현실에 부딪혀 한국인이 고뇌하고 사색하였던 대상 세계는 매우 실존적이었고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한국사상이라 하면 한국인이 어떤 자극을 받아 사색하고 자각한 의미내용이다. 그러한 자극이 본래적으로 고유한 것일 수도 있고, 외래의 것일 수도 있다. 경험적・감각적인 것일 수도, 관념적・이성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그것들의 혼합일 수도 있다. 보수적인 것일 수도 진보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자극과 도전에 대한 대응 방식은 시대나 여건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사상을 일률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단위를 좀 확대해서 생각해본다면, 한국사상은 역시 한국사상이다. 외래 사상들과의 교섭관계가 어떠했든, 한국의 역사 속에서 겪었고, 한국의 역사 속에 깃든 한국사상은 누가 대신할 수 없는 그 나름의 고뇌와 애환 속에 이루어진 것이요, 그 역사적 실존이 중국이나 그 밖의 나라들과 달랐던 까닭에 아무리 비슷해도 남다른 줄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사상은 다른 누구도 아니요 한국인 스스로 책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역사를 돌이켜볼 때, 과연 우리 선인들은 한갓 의・식・주뿐 아니라 철학적 사상적 핵심문제에 대한 사고의 전통을 지녔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러면 그 특징은 어떠하며, 어떠한 문제의식을 주제로 접근해볼 수 있겠는가? 앞으로 한국사상이 다루어야 할 과제와 미래적 전망은 어떠한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주요하다고 여겨지는 사항을 꼽아본다면 대개 다음과 같다 .
우선 크게 보아서는:
① 한국 사상은 오랜 세월 변천해 오면서 다양한 모습을 띠고 때로는 상반되는 길을 달리기도 하였지만, 궁극적으로 이질성의 통합과 다양성이 조화하는 길을 추구하였다는 것,
② 전통시대에 보여 온 불균형, 불평등으로부터 균형과 평등을 이루는 세계관의 이론적 탐색, 이를테면 억음부양(抑陰扶陽)으로부터 조양율음(調陽律陰)으로 전환하는 원리의 모색.
③ 철학의 주요 주제인 특수와 보편을 상호 매개시키는 이론의 탐색, 대동소이(大同小異)로 개체와 전체가 함께 존립하는 이론의 모색.
그리고 세부적으로:
① 한국 상고(上古)의 사상적 특징.
② 외래사상과 한국 본래의 민속 신앙과의 관계.
③ 유교・불교・도교・기독교 자체의 내부적 심화와 사회적 영향 및 다른 사상들과의 관계.
④ 근세 조선에서 국교적 지위를 누렸던 한국주자학의 기본성격에 대한 인식.
⑤ 조선 후기의 실학・양명학・예학・의리학 그리고 후기 성리학의 사상적 특징과 사회적 기능.
⑥ 근현대 한국에서, 기독교를 비롯한 서양 문물의 충격과 대응.
⑦ 민주화, 과학화, 그리고 국제화 시대에 한국 사상의 역할과 위상 정립.
⑧ 동・서의 대립과 이념 갈등을 넘어 한국사상이 선도적으로 세계화하는 사상적 자원의 탐색.
위에 지적한 사례는 정확하게 계량적으로 언급한 것이랄 수는 없으나 한국철학을 성찰할 때 필수적이라고 여겨지는 대목을 열거해본 것이다.
한국사상사를 돌이켜보건대, 사상적으로 중심이 되었던 것은 시대마다 달랐다. 각기 학파나 종파의 내부에서 대립, 상충하는 경우를 보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지리멸렬(支離滅裂), 중구난방(衆口難防)은 문제이겠으나 서로 다른 것 또한 그럴만한 까닭이 있어서일 것이며, 시대적 요청과 더불어 그 이유를 신밀(愼密)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의 오랜 역사를 통하여 겪어 온 사상적 체험은 수준 높고 다양하였다. 때로는 편안하고 때로는 충격적이다. 대립과 갈등도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아시아의 동북, 극동지방 그리 크지 않은 특정지역인 한역(韓域)에 때마다 풍성한 사상적 원료를 투입하여 우리 겨레로 하여금 그러한 사상적 시련을 극복해보라는, 그리하여 소화력이 튼튼한 위장을 만들라는 시험장이 되도록 하였는바 아마도 우리가 모르는 조물주의 뜻이 개입된 것이 아닐런지!
이제 세계는 동양이나 서양만의 시대가 아니며, 모든 사람은 하나하나가 자주독립한 절대적 존재가 되었다. 지난날 중국 중심의 천하에서 한국은 아시아의 동북방에 위치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우주적으로 열린 시대의 한국은 더 이상 동북 모퉁이가 아니요, 지구 세계의 전 방향으로 열려져 있으며, 서양 전체를 마주한 아시아 대륙의 끝이며 시작인 동방의 나라가 되었다.
한국은 자기에게 잠재된 사상적 역량을 발휘하여, 나침반을 잃고 우왕좌왕 헤매는 이념적 혼란을 극복하고, 지난날의 선각자와 사상가를 딛고 넘어서서 우주시대의 앞날을 열어줄 철학사상을 선도적으로 개발하고 창출하여야 한다는 소명을 저버릴 수 없게 된 것이 아닌가? 한국사상은 가장 민족적이면서 가장 국제적인 것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은 사방으로 열려 있는 중심인 것이다.
“겨울망울 속 꿈틀거림으로 새 봄을 기다리며
너 나, 안 밧(밖)이 녹아 있는 절대현재의 초탈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짊어진 현실참여의 창조적 주체로서
생명의 존엄과 인격의 존중을 푯대삼아
양심과 지성으로 이 땅의 좌익과 우익을 삭이고 녹여서
한 사람이 만 사람 되고 만 사람이 한 사람 되는 세상을
우리 함께 열어 보세나.”
2022 정월.
한국사상연구원 초대 원장 이동준